살아 계신 목자 박마리아님!
 그 해 여름은 뜨거웠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이 아니라, 교회 안에 불어닥친 성령의 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에는 말씀묵상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성령충만을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름수양회가 성령수양회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잘 몰랐습니다.
 그 것이 무얼 의미하는 지, 왜 그래야하는지, 또 가능한 것애지...
 그런데, 수양회에 가서 기도하던 중, 그 분이 이상한 언어로 기도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하지만 아주 멋스럽게 들리는 언어였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그 분이 방언을 하시다니... 그간 말씀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길레 우리 교회 안에는 방언하는 분이 없었는 줄 알았는데 저 분도 방언을 하시는 구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분은 마치 싱그러운 양파와 같아서, 까면 깔 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4월은 그 분을 기억할 수 있기에 행복한 시절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그 분과의 첫 기억은 누나 같고 언니 같은 모습입니다.
 결혼 전, 지금의 목사님과 교재를 시작 중이던 어느 날,
  한나목자님은 가까운 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싶어한다며 만나 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저 가까운 언니라는 말에 저는 별 부담 없이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믿음직한 언니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주사랑선교회에서 만났던 그 분의 모습은 한 단체를 이끄는 리더의 모습이었습니다.
  앞장 서서 실천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그토록 바쁜 가운데에서도 전체와 부분을 빠짐없이 챙기시며 배려하시는 모습은 저에게 적지안은 위어담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 분은 누구보다 위생적이었으나 고상하지 않았고, 어린자 어려운자 방황하는자 소외된자들과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으나 비굴하지도 경박스럽지도 않았고, 항상 누구보다 많은 일을 계획하고 수행하였으나 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 분의 모습은 그 분을 따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늘쌍 무언가 기대하게 했고, 매사에 순복하게 했으며, 또한 계속적으로 도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을 알게된 후  몇 해가 안 되어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내 눈에 비춰진 그 분의 능력과 리더쉽과 완벽한 모습 뒤에 감춰진 누구보다 연약하고, 누구보다 고독하고, 그로 인해 누구보다 투쟁적인 그 분의 삶이었습니다.
  심장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 탓에 그 분은 언제나 적지않은 약과 주사기구 등 응급처치 수단을 가지고 다녀야했습니다.
  극도로 약한 면역체계 때문에 더위와 추위 등의 기후 변화는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의 환경이었습니다.
  자신이 맛보았던 그 달고 오묘한 신앙의 세계,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동역자들과 양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그 세계, 그러나 막상 당사자들은 당장 몇 마디의 위로를 더 원하고 받아들이기를 게을리하는 그 세계...
  그 분이 느끼기에, 자신과 주변인들과의 의식 사이에는 적지않은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끊임 없이 밀려드는 육체적 정신적 무기력감과 지침 없이 투쟁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그 분의 그토록 처절한 투쟁과 강인한 도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누구보다 휴식이 필요한 몸이지만, 필요하다면 48시간 동안 자지 않을 수 있는 힘.
  인도네시아 경찰들에게 자지 못하고 몇 날 동안 신문을 받으면서도 초지일관 당당할 수 있었던 그 힘.
  결국, 경찰들의 손을 들게하고야 말았던 그 힘은 저에게 적지안은 충격마저 주었었습니다.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모든 힘들은 그 분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매 순간 죽음의 권세와 싸워야했던 지독스러운 환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 실체는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셨던 그 분에게는 육체의 연약함도, 리더의 고독함도 한계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편, 그 분은 교회의 훌륭한 리더일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딸로써, 누나로써, 동생으로써, 며느리로써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주일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모임이 있다면, 그 분은 시간을 쪼개서 미리 미리 찾아뵙고 축복했으며 이해를 구하셨습니다.
  그 분이 가시는 곳에서는 교재와 위로와 파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와 잠시 함께했던 안내견 소라까지도 그 분으로부터 개껌을 선물 받았을 정도입니다.
  전에도 오늘도 저라는 자는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 교만함 때문에 마리아목자님과 그리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아마도 고백은 제 느낌일 것입니다.
  그 분의 시야, 그 분의 기도, 그 분의 비전 안에서는 모든 이들과 함께 저 역시 동일한 크기요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시대를 함께했던 다른 동역자님들만큼 그 분과의 추억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 제 기억 속에는 그 분의 의식이, 가슴 속엔 그 분의 정신이 살아 있을 뿐입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목자님을 추억하는 묵상을 부탁하고 싶은데 그 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러했듯, 인간은 간 데 없고, 함께했던 이들도 차차 스러져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 분의 사랑’, ‘양들을 향한 그 분의 사랑’ ‘열매를 위한 그 분의 열정과 희생’
  예수님과 함께했던 열두 사도는 가고 없어도, 70 제자마저 가고 없어도, 그래서 예수님의 흔적을 기릴 자가 아무도 없이 2천여년이 흘어왔어도,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있듯이.
  우리 안에는 오직 주의 사랑에 메여, 마지막 한 줌의 기운까지 불사르고 순교하신 그 분의 정신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이것마저 잊혀지고 살아진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전설을 기억하며 신화를 이야기할 뿐일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실 그 분.
  그분은 자신의 사적이 전설이 되고, 신화로 남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을 추모하면서, 저는 그 분과 함께하셨던 능력의 근원 되신 성령님을 다시 초청해 드리고 나아가 그 분이 극복하셨던 한계 즉, 나의 연약함과 고독함을 향해 새롭게 투쟁할 것을 결심합니다.
  부족한 나, 오래 걸리는 나, 답답한 나를 보시며 ‘선교사의 비전’을 보셨던 그 분의 환상이 실현되는 그 날, 누구는 천국에서, 누구는 이 땅에서 함께 웃을 그 날을 꿈꿔 봅니다.